import java.util.Scanner;
public class Welcome {
public static void main(String[] args) {
//PART2에서 작성한 내용
Scanner input = new Scanner(System.in);
System.out.print("당신의 이름을 입력하세요 : ");
String userName = input.next();
System.out.print("연락처를 입력하세요 : ");
int userMobile = input.nextInt();
String greeting = "Welcome to Shopping Mall";
String tagline = "Welcome to Book Market!";
boolean quit = false; // 종료 여부 설정 변수
while(!quit) { // quit 변수가 true일 때까지 계속 반복
System.out.println("***************************************");
System.out.println("\t"+greeting);
System.out.println("\t"+tagline);
System.out.println("***************************************");
System.out.println("1. 고객 정보 확인하기 \t4. 바구니에 항목 추가하기");
System.out.println("2. 장바구니 상품 목록 보기 \t5. 장바구니의 항목 수량 줄이기");
System.out.println("3. 장바구니 비우기 \t6. 장바구니의 항목 삭제하기");
System.out.println("7. 영수증 표시하기 \t8. 종료");
System.out.println("***************************************");
System.out.println("메뉴 번호를 선택해주세요 ");
int n = input.nextInt();
//System.out.println(n +"n번을 선택했습니다. ");
if(n < 1 || n > 8 ) { // 메뉴 선택 번호가 1~8이 아니면 아래 문자열 출력
System.out.println("1부터 8까지의 숫자를 입력하세요.");
}
else {
switch(n) { //switch문을 이용하여 메뉴 선택 번호별 정보 출력
case 1:
System.out.println("현재 고객 정보 : ");
System.out.println("이름" + userName + " 연락처 "+ userMobile); // 메뉴 번호가 1일 때 입력된 고객 이름과 연락처 출력
break;
case 2:
System.out.println("장바구니 상품 목록 보기 : ");
break;
case 3:
System.out.println("장바구니 비우기: ");
break;
case 4:
System.out.println("장바구니에 항목 추가하기 : ");
break;
case 5:
System.out.println("5. 장바구니의 항목 수량 줄이기");
break;
case 6:
System.out.println("6. 장바구니의 항목 삭제하기");
break;
case 7:
System.out.println("7. 영수증 표시하기");
break;
case 8:
System.out.println("8. 종료");
quit = true; // quit에 true를 넣어 반복문 종료 조건을 충족
break;
}
}
}
}
}
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우리의 잘못은, 우리가 사실들을 '원현상들'로 보아야 할 곳에서 어떤 설명을 구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언어놀이가 행해지고 있다고 말해야 할 곳에서 말이다. (철학적탐구 p.308)
언어놀이를 우리의 체험들에 의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놀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철학적탐구 p.308)
"그 당시 나는 ......라고 말하려 했다"란 표현의 문법은 "그 당시 나는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란 표현의 문법과 근친적이다. 전자의 경우에 그 기억은 의도에 관한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이해에 관한 것이다. (철학적탐구 p.310)
낱말의 쓰임에서 '표층 문법'이 '심층 문법'과 구별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낱말의 쓰임에서 우리에게 즉시 각인되는 것은 문장 구성에서 그 낱말이 사용되는 방식, 그 낱말의 쓰임 중ㅡ말하자면ㅡ귀로 파악될 수 있는 부분이다. ㅡㅡ그리고 이제 가령 '뜻하다'라는 낱말의 심층 문법을 우리가 그 낱말의 표층 문법 때문에 추측하게 될 것과 비교하라. 우리들이 훤히 알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해도 하등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철학적탐구 p.311)
수용적 태도가 어떤 것에 대한 하나의 '지시'라고 불린다면,ㅡ그 지시는 우리가 그것을 통해 얻는 감각에 대한 것이 아니다. (철학적탐구 p.313)
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분위기의 기술은 특별한 목적들을 위한, 언어의 특별한 적용이다. (('이해'를 분위기로서, 심적 작용으로서 해석하는 일. 우리들은 모든 것에 대해 어떤 분위기를 덧붙여 구성할 수 있다. '기술 불가능한 성격'.)) (철학적탐구 p.294)
"의욕도 하나의 경험일 뿐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말했으면 한다. ('의지'도 단지 '표상'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그것이 올 때 오며, 내가 그것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일으킬 수 없다고?ㅡ무엇처럼? 나는 대체 무엇을 일으킬 수 있는가? 내가 의욕을 이야기할 때, 나는 그것을 무엇과 비교하는가? (철학적탐구 p.295)
그리고 우리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의욕하려고 결코 시도할 수 없는 한에서만, 나는 언제라도 의욕할 수 있다."
행함 자체는 아무런 경험의 부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연장 없는 점, 바늘의 뾰족한 끝처럼 보인다. 이 뾰족한 끝이 본래의 동작 주체처럼 보인다. 그리고 현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단지 이 행함의 결과처럼 보인다. "나는 행한다"는 모든 경험으로부터 분리된 확정된 뜻을 지는 것처럼 보인다. (철학적 탐구 p.298)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예지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수의적 운동들이 예언된다는 사실을 늘 망각한다. (철학적탐구 p.301)
우리들은 의사가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잘못은 있다. (철학적탐구 p.304)
"의욕도 하나의 경험일 뿐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말했으면 한다. ('의지'도 단지 '표상'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그것이 올 때 오며, 내가 그것을 일으킬 수는 없다. (철학적탐구 p.295)
질문: 의욕이 경험일까?
의욕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마음'을 말하는데 이러한 마음도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의욕만으로는 경험을 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한 학기가 시작 될 때 어떠한 과목을 A+ 받겠다 라는 의욕은 단지 나의 마음가짐일 뿐이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경험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떠한 과목을 A+ 받겠다 라고 의욕을 가지고 과목을 듣기 시작할 때 부터는 경험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들은 의사가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잘못은 있다. (철학적탐구 p.304)
질문: 왜 "의사가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 " 라고 말하는 것인가?
"의사가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는 의견이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와 같은 의미인지 궁금하다. 만약 의견이 개진된다고 말하면 의견이 점차 나아져 발전함 또는 나아지게 발전시킴 인것인가? 지금 글을 적으며 생각을 한 것이 있다. 의견이 점차 나아져 발전함이 맞는 말인 것인가? 질문처럼 "의사가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 의 의미를 아직 확실히 잘 모르겠다. 이 문장의 의미를 계속해서 생각해보며 '내적 갈등'을 해볼 것이다.
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철학적 질병들의 한 가지 주요 원인은 편식이다: 우리들은 자신의 사유를 오직 한 종류의 예들로 먹여 기른다. (철학적 탐구 p.289)
언어는 하나의 도구이다. 언어의 개념들은 도구들이다. 이제 우리들은 가령, 우리가 어떤 개념들을 사용하느냐는 큰 차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가령 우리가 어떤 개념들을 사용하느냐는 큰 차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결국 물리학을 미터와 센티미터로도, 피트와 인치로도 할 수 있듯이, 그 차이는 단지 편리성이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참은 아니다 예컨대 어떤 측정 체계에서의 계산들이 우리가 들일 수 있느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노력을 요구한다면 말이다. (철학적 탐구 p.281)
개념들은 우리를 탐구로 이끈다. 개념들은 우리의 관심이 표현이며, 우리의 관심을 주도한다. (철학적 탐구 p.281)
'내적 과정'은 외적 기준들을 필요로 한다. (철학적 탐구 p.284)
언어는 하나의 도구이다. 언어의 개념들은 도구들이다. 이제 우리들은 가령, 우리가 어떤 개념들을 사용하느냐는 큰 차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철학적 탐구 p.281)
질문: 여기서 '어떤'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언어는 하나의 도구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체계, 사물, 행동, 생각, 그리고 상태를 나타내는 체계,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의미들의 체계, 문법적으로 맞는 말의 집합, 언어 공동체 내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의 집합의 정의를 뜻하는 것 같다.
질문: 언어라는 것 자체를 왜 도구 취급을 하는 것인가?
언어를 도구 취급하는 이유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때 문법을 잘못 말하거나 발음이 안좋거나 해도 의사소통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언어 없이 이모티콘을 사용하여 말을 대신 하거나, 손짓과 몸짓으로 의사소통이 된다. 이러한 것 처럼 언어도 이모티콘이나 손짓, 몸짓과 같이 도구라고 취급하는 것이다.
견해를 지닌다는 것은 하나의 상태이다.ㅡ무엇의 상태? 영혼의? 정신의? 자, 우리들은 무엇에 대해서, 그것이 어떤 견해를 지닌다고 말하는가? 예컨대 아무개 씨에 대해서. 그리고 이것은 올바른 대답이다. 우리들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아직 어떠한 해명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더 깊이 파고드는 물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특수한 경우에 우리는 무엇을 어떤 사람이 이러이러한 의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한 기준으로 보는가? 언제 우리는 그가 그때 이러한 의견에 도달했다고 말하는가? 언제 우리는 그가 그의 의견을 바꾸었다고 말하는가? 등등.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대답들이 우리에게 주는 그림은 여기서 무엇이 문법적으로 상태로서 취급되는가를 보여 준다. (철할적탐구 p.282)
질문: "무엇이 문법적으로 상태로서 취급되는가를 보여준다." 의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이렇게 말한 이유가 궁금하다.
위의 문장에서 아무개씨가 어떠한 문장을 말을 하였다. 우리는 "우리들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아직 어떠한 해명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더 깊이 파고드는 물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특수한 경우에 우리는 무엇을 어떤 사람이 이러이러한 의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한 기준으로 보는가? 언제 우리는 그가 그때 이러한 의견에 도달했다고 말하는가? 언제 우리는 그가 그의 의견을 바꾸었다고 말하는가? 등등." 과 같이 생각을 할 것이다. 아무개 씨가 말한 문장을 자신이 답을 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동시에 우리는 답도 같이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문법적으로 상태로서 취급되는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내적 과정'은 외적 기준들을 필요로 한다. (철학적 탐구 p.284)
나도 '내적 과정'은 외적 기준들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외부에 대한 접촉이 없을 순 없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 디지털매체를 통해 영상을 보거나, 게시물을 보는 것,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것 등등 모든 것이 외적으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른 사람과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문제가 어려운 것이라고 과정하고 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해결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였을 때, 다른 사람이 풀어낸 과정을 나는 그 과정을 다시 풀어 볼 것인데, 다른 사람이 풀어낸 과정이 잘못 되었다고 판단이 되는 것도 외적 기준을 통해 '내적 과정'이 생긴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어떠한 친구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떠한 주장을 하면 친구는 그 주장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러한 이야기를 정답이 아닌 생각을 하게끔 하는 이야기였고,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혼자서 곰곰히 생각을 많이 했다고 느낀다. 우리의 사고가 생겨나는 것도 어떠한 일을 겪거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깨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일,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외적 기준이라 생각한다.
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한 낱말을 이러한 의미로 듣는다는 것. 그런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가! 이렇게 표현되고, 이렇게 강조되고, 이렇게 들리면, 그 문장은 이러한 문장들, 그림들, 행위들로의 이행의 시작이다. ((다수의 잘 알려진 길들이 이러한 말로부터 온갖 방향으로 이어진다.)) (철학적 탐구 p.269)
어떤 것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것, 그리고 그 동일한 것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하는 것. 이 두 과정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들이 그것을 그림으료 묘사하고자 한다면, 우리들은 그 사건의 그림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해 볼 것이다. 즉, 그것에 선을 그어 지우기나 그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기 등과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보기에는 조야한 표현 방법이다. 낱말 언어에서는 "우리는 아니다"라는 기호를 사용한다. 이것은 서투른 미봉책과 같다. 우리들은 사유속에서는 일이 분명히 다르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철학적 탐구 p.274)
우리들은 가령 이 문장 속에서의 낱말의 기능에 관해 이야기했으면 한다. 마치 문장이 그 속에서 낱말이 특정한 기능을 지니는 하나의 기제인 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은 무엇에 있는가? 그것은 어떻게 백일하에 드러나는가? 왜냐하면 실은 아무것도 숨겨져 있지 않으며, 우리는 실로 그 문장 전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능은 계산법의 운행에서 스스로 들어나야 한다. ((의미체.)) (철학적 탐구 p.278)
"낱말의 의미는 의미의 설명이 설명하는 것이다. "즉: "의미"란 낱말의 쓰임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무엇이 "의미의 설명"이라고 일컬어지는가를 살펴보라. (철학적탐구 p.278)
개념들은 우리를 탐구로 이끈다. 개념들은 우리의 관심의 표현이며, 우리의 관심을 주도한다. (철학적탐구 p.281)
외침과 웃음은 의미로 가득 차 있다, ㅡ 이렇게 나는 말할 수 없는가? 그리고 그것은 대충, 그것들로부터 많은 것을 읽어 낼 수 있음을 뜻한다. (철학적탐구 p.272)
질문: 왜 외침과 웃음은 의미로 가득차 있다 말할 수 없는가?
나는 외침과 웃음은 의미로 가득차 있다고 말할 것이다. 외침은 '큰 소리를 지르는 일', '의견이나 요구 따위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일' 로 표현 하는데 '의견', '요구' 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이 시끄러워 나의 의견이나 요구를 들어 주기 위해 외침을 하거나, 학생회장과 같은 직위를 가진 사람들이 의견이나 요구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웃음은 행복해서 웃거나, 슬프지만 웃거나, 헛웃음 등등 이 있는데, 이러한 행복, 슬픔, 헛웃음 모두 의미가 가득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이다"란 낱말은 상이한 두 의미로 (계사와 등호로) 사용된다고 말하면서, 그것의 의미가 그것의 쓰임ㅡ즉 계사와 등호로서의 쓰임ㅡ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우리들은 이 두 종류의 쓰임이 하나의 의미를 낳지 않는다고, 같은 낱말에 의한 직무 통합은 비본질적인 우연이라고 말했으면 한다. (철학적탐구 p.279)
질문: 왜 같은 낱말에 의한 직무 통합이 비본질적인 우연이라고 말하는가?
같은 낱말이어도 쓰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부정에 대해 "X"와 "Y"라는 두 개의 상이한 말이 있는 어떤 언어를 생각하라. 이중"X"는 긍정을 낳지만, 이중 "Y"는 강조된 부정을 낳는다. (생략) (철학적탐구 P.276)
질문: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이 있는데, 강한 긍정이 부정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우리가 힘들 때, SNS에 게시물을 올릴 때 힘들다고 올릴 수 도 있지만, 힘든 것을 감추기 위해 다른 글을 적거나, 빗대어 말을 할 것이다. 예를들어 '나는 힘들다'라고 올리지 않고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 라고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강한 부정이면 부정일수록, 긍정을.강한 긍정이면 긍정일수록, 부정을. 인간의 근본적인 심리와 원리가 그렇게 만든다라고 생각한다.
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우리들은 이렇게 말했으면 한다: "그것이 좋은 근거인 것은, 오직 그것이 그 사건의 발생을 실제로 개연성 있게 만들기 떄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이 실제로 그 사건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 때문, 그러니까 말하자면 경험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철학적탐구 p.255)
경험에 의한 정당화는 끝이 있다. 만일 끝이 없다면, 그것은 정당화가 아닐 것이다. (철학적탐구 p.255)
"언어가 없으면 우리는 서로 의사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아니다ㅡ그러나 필시: 언어가 없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이러하게 영향을 줄 수 없다, 도로와 기계들을 건설할 수 없다, 기타 등등이다. 그리고 또한: 말과 글의 쓰임 없이는 사람들은 의사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 (철학적탐구 p.257)
우리들은 문법규칙들을 "자의적"이라 부를 수 있다; 이것이, 문법의 목적은 단지 언어의 목적이라면 말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의 언어가 이러한 문법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이러한 사실들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ㅡ우리들은 여기서 "할 수 있을 것이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자문해야 할 것이다. (철학적탐구 p.259)
우리들은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즉, 명령이란 그에 따라 수행된 행위의 그림이라고. 그러나 또한, 그에 따라 수행되어야 할 그림이라고 (철학적탐구 p.265)
질문: 명령이 결과를 만들어낸 행위, 그리고 과정을 만드는 행위란 뜻이 동일한 뜻인가?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간부가 용사한테 '산을 밀어라'라고 명령을 하는 것이 산을 미는 과정을 만드는 행위가 아닌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부모님이 나에게 '커피를 타줘'라고 말(명령)을 했을 때, 내가 커피를 컵에 타는지, 그릇에 타는지, 집에서 타는지, 다른 장소에서 타는지 등등의 과정을 만드는 행위가 아닌 단지 '커피를 타줘'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위라고 또한 생각한다.
나는 내 손가락이 책상을 건드리면 어떤 저항을 감지할 것이라고 가정할 어떤 근거들을 갖고 있는가? 어떤 근거들이 있어, 이 연필이 내 손에 꽂히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믿는가?ㅡ내가 이렇게 묻는다면, 수백 가지의 근거들이 앞다퉈 나타난다. "어쨌든 나는 그것을 몸소 무수히 경험해 왔다; 그리고 비슷한 경험들에 관해 똑같은 정도로 자주 들어 왔다; 만일 그게 그렇지가 않다면, .....할 것이다; 등등."
질문: 저항이라는 언어를 고통이라고 해석하는 것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저항은 '어떤 힘이나 조건에 굽히지 아니하고 거역하거나 버팀', 고통은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이라고 나와있듯이 나도 저항을 고통이라고 해석하는게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명령과 수행 사이에는 어떤 틈이 있다. 그 틈은 이해를 통해 메워져야 한다. 이해에서 비로소 그것은 우리가 이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뜨한다. 명령ㅡ그것은 그야말로 단지 소리, 잉크 자국일 뿐이다.ㅡ (철학적탐구 p.241)
모든기호"는 혼자서는 죽어 있는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기호에 생명을 주는가? ㅡ 쓰임에서 그것은산다. 그것은 거기에서 자신 속에 생명의 숨을 받아들이는가?ㅡ 또는 쓰임이 그것의 숨인가? (철학적탐구 p.241)
계획은, 계획으로서는, 충족되어 있지 않은 어떤 것이다. (소망, 기대, 추측 등과 같이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뜻하는 바는, 기대는 그것이 어떤 것에 대한 기대이기 때문에 충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믿음, 의견은 그것이 ‘어떤 것이 사실이다, 현실적인 것이다, 생각함의 과정 밖에 있는 것이다’라는 의견이기 때문에 충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철학적탐구 p.243)
우리가 "왜"라는 물음을 억제할때, 비로소 우리는 중요한 사실들을 종종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탐구에서 그것들은 우리를 어떤 대답으로 인도한다. (철학적탐구 p.252)
모든 기호는 혼자서는 죽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기호에 생명을 주는가?ㅡ쓰임에서 그것은 산다. 그것은 거기에서 자신 속에 생명의 숨을 받아들이는가?ㅡ또는 쓰임이 그것의 숨인가? (철학적탐구 p.241)
질문: 기호를 사용하는 방법 이외에 기호에 숨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x,/ 처럼 수학적 기호를 보면 우리는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알아 차릴 수 있다. 이러한 기호가 쓰임으로 생명(숨)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철학적탐구에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ㅡ 라는 기호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읽었었다. 공동탐구를 진행하면서 교수님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ㅡ 기호가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 하였는데, ㅡ 의 의미는 강조나 부가 설명 또는 예를 들기 위하여 중간에 어구를 삽입하는 경우, 문장 안의 다른 어구들과 구분하기 위해 해당 어구의 앞뒤에 쉼표를 쓰는데 쉼표 대신 줄표를 쓸 수 있다. 삽입한 어구 안에 쉼표가 있을 때에는 삽입한 어구의 앞뒤에는 쉼표를 쓰지 않고 줄표를 써야 한다.(위키백과 참조) 라고 한다. 우리는 ㅡ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예를 들어, 또한, 또는 등으로 표현을 한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예를 들어, 또한, 또는 등을 사용하지 않고 ㅡ 기호를 사용하여 표현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