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한 낱말의 정당화 없이 사용한다는 것이 그 낱말을 부당하게 사용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철학적 탐구 p. 189)

 

우리는 어떤 과정을 더 자세히 알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특정한 개념을 갖기 때문이다.
(철학적 탐구 p.196)

 

감각 표현의 문법이 `대상과 명칭’의 틀에 따라 구성된다면, 그 대상은 무관한 것으로서 우리의 고찰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철학적 탐구 p.191)

 

그런데 ‘나는 오직 나 자신의 경우로부터만 ……안다’라는 명제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명제일까? 경험적 명제? 아니다. -문법적 명제? (철학적 탐구 p. 191)

 


 

게다가 우리들은 "그는 고통스럽다." 대신 "나는 그가 고통스럽다고 믿는다."라고 말할려고 결심할 수 있다.
(철학적 탐구 p.194)

질문: "그는 고통스럽다." 대신 "나는 그가 고통스럽다고 믿는다."라고 말하려고 결심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믿는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고통을 직관(감)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인가?

 

고통은 직관과 직감이 동시에 일어나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샤워를 하기전에 물의 온도를 맞출 때, 물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손으로 확인해본다. 물이 뜨거우면 샤워기 온도를 조절하는데, 다음번에 샤워를 할 때는 물이 뜨거운 것을 알기 때문에 샤워기 온도를 더 낮추어 물의 온도를 측정할 것이다. 이때 물이 뜨겁다는 것은 직감이고, 다음번에 샤워를 할 때 물이 뜨거운 것을 알아 샤워기 온도를 더 낮추는 것은 직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통 "그가 고통스럽다."라고 말하지 "나는 그가 고통스럽다고 믿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공통탐구에서 "그가 고통스럽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고통에 대한 나도 고통에 대한 상황을 경험해 봤을 때 말을 하는 것이라 말하고, "나는 그가 고통스럽다고 믿는다."는 고통의 경험을 느껴 보지 못했을 때 말하였다. 하지만 나는 전부 "그는 고통스럽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고통에 대해 내가 상황을 경험하지 못하여도 그 상황과 비슷한 작은 경험 혹은 더 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작은 경험은 작은 경험들이 축적되 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내가 더 큰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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