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한 낱말이 어떻게 기능하느냐는 추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그 낱말의 적용을 주시하고, 그로부터 배워야한다.
그러나 난점은 이러한 배움을 가로막는 선입견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선입견이 아니다.
(철학적 탐구 p.207)

 

문법에서 기준들과 징후들 사이의 동요는 일반적으로 오직 징후들만이 존재하는 듯한 가상이 생기게 만든다. 우리는 가령 이렇게 말한다: "경험은 기압계가 떨어지면 비가 온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경험은 우리가 습기와 추위에 대해 특정한 느낌들을 지니거나 이러이러한 시각 인상을 받으면 비가 온다는 것도 가르쳐 준다." 그러고 나서 이에 대한 논거로서 우리들은 이러한 감각 인상들이 우리를 기만할 수 있음을 진술한다. 그러나 이때 우리들은, 그것들이 우리를 기만하여 다름 아니라 비를 믿게 한다는 사실은 하나의 정의에 의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철학적탐구 p.213)

 

물론 때때로 우리는 문장에 심리적 과정을 동반함을 "생각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동반자를 "사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ㅡㅡ한 문장을 말하고, 그것을 생각해 보라: 그것을 이해하면서 말해 보라!ㅡ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말하지 말고, 당신이 그것을 이해하면서 말할 떄 그것에 동반한 것만을 해 보라!ㅡ(이 노래를 표정을 지으면서 부르라! 그리고 이제 노래는 부르지 말고, 그 표정을 반복하라!ㅡ그리고 여기서도 우리들은 무엇인가를 반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몸을 흔듦, 빠르고 느린 호흡 등등.) (철학적탐구 p. 203)

 


물론 때때로 우리는 문장에 심리적 과정을 동반함을 "생각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동반자를 "사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ㅡㅡ한 문장을 말하고, 그것을 생각해 보라; 그것을 이해하면서 말해 보라! -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말하지 말고, 당신이 그것을 이해하면서 말할 때 그것에 동반한 것만을 해 보라! (철학적탐구 p. 203)

질문: 그런 우리는 그러한 동반자를 왜 "사고"라고 부르지 않는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내가 말하는 것을 "사고"라고 말하지 않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도 문장에 심리적 과정을 동반함을 "생각함"이라고 부른다." 라고 말했듯이 생각은 하나의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통해 개념이 생기고 이러한 개념을 "사고"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 낱말이 어떻게 기능하느냐는 추측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그 낱말의 적용을 주시하고,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 (철학적탐구 p.207)

질문: 낱말의 적용을 주시하고 배우는 것 자체가 추측하기 위한 행동이 아닌가?

 

책상이라는 낱말을 배울 때 생각해보면 책상이라는 이미지나 사물을 보여주며 낱말을 배운다. 이때  책상이라는 이미지나 사물이 책상이라는 낱말의 적용을 주시하지 이 낱말을 배울 때 추측한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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