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우리는 현상(예컨대 생각함)이 아니라 개념(예컨대 생각함이라는 개념)을 분석하며, 따라서 낱말의 적용을 분석한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추진하는 것은 명목주의인 듯이 보일 수 있다. 명목주의자들은 모든 낱말들을 이름들로 해석하는 잘못, 그러니까 낱말들의 사용을 실제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기술에 대해 말하자면 단지 공수표를 주는 잘못을 범한다. (철학적 탐구 p.222)

 

상상가능성이 우리의 탐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해서는 불명료성이 존재한다. 즉,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문장의 뜻을 보증하는지에 관해서 말이다. (철학적 탐구 p.226)

 

"물론 나는 '지금 나는 이러이러한 표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나는 지니고 있다'란 말은 단지 다른사람들을 위한 신호일 뿐이다; 표상의 세계는 전적으로 표상의 기술에 묘사되어 있다."ㅡ당신이 뜻하는 바는, "나는 지니고 있다"는 "자, 주목!"과 같다는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실제로는 달리 표현되어야 마땅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단순히, 손으로 어떤 신호를 하고 나서 기술함으로써 말이다.ㅡ우리들이 여기서처럼(어째든 그 의무를 다하고 있는) 우리의 일상적 언어의 표현들에 동의하지 않을 때, 우리의 머리에는 일상적 표현 방식의 그림과 상층되는 어떤 그림이 자리 잡는다. 한편 우리는 우리의 표현 방식이 사실을 실제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마치 (예컨대) "그는 고통을 지니고 있다"란 명제가, 이 사람이 고통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도 여전히 거짓일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마치, 비록 그 명제는 뭔가 옳은 것을 부득이 주장할지라도, 그 표현 형식은 뭔가 잘못된 것을 말하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철학적탐구 p.229

 


"고통"이란 개념을 당신은 언어와 함께 배웠다. (철학적탐구 p.222)

질문: 언어 없이는 "고통"의 개념이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것인가?

 

언어 없어도 "고통"의 개념과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언어 없이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것이라면,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을 시기에 살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표출을 동작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장과 관련해서 무엇인가를 상상하는 것은, 그 문장에 따라 어떤 소묘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문장의 이해를 위해서는 본질적이지 않다. (철학적 탐구 p. 226

질문: 문장과 관련해서 상상하는 것 이외에 문장 이해를 위한 본질적인 방법이 없을까? 애초에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문장을 이해할려고 할 때 상상(생각)을 바탕으로 문장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언어의 문장을 봤을 땐 상상(생각)을 할 수 없고,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사전을 찾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행동으로 문장을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나는 문장과 관련해서 상상하는 것 이외에 문장 이해를 위한 본질적인 방법이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사람에 대해서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하지만, 나무나 돌에 대해서는 그것들은 아무 의식도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사람들은 모두 무의식 상태일까?-아니다; 그말의 일상적인 뜻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나는 의식을 지니지 않을 것이다-내가 지금 실제로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의식을 말이다. (철학적탐구 p.236)

질문: 내가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경험의 사실인가?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경험의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생각을 바탕으로 개념이 생기고 개념을 통해 사고가 생겨 우리는 이러한 사고를 통해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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