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우리들은 이렇게 말했으면 한다: "그것이 좋은 근거인 것은, 오직 그것이 그 사건의 발생을 실제로 개연성 있게 만들기 떄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이 실제로 그 사건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 때문, 그러니까 말하자면 경험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철학적탐구 p.255)

 

경험에 의한 정당화는 끝이 있다. 만일 끝이 없다면, 그것은 정당화가 아닐 것이다. (철학적탐구 p.255)

 

"언어가 없으면 우리는 서로 의사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아니다ㅡ그러나 필시: 언어가 없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이러하게 영향을 줄 수 없다, 도로와 기계들을 건설할 수 없다, 기타 등등이다. 그리고 또한: 말과 글의 쓰임 없이는 사람들은 의사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 (철학적탐구 p.257)

 

우리들은 문법규칙들을 "자의적"이라 부를 수 있다; 이것이, 문법의 목적은 단지 언어의 목적이라면 말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의 언어가 이러한 문법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이러한 사실들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ㅡ우리들은 여기서 "할 수 있을 것이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자문해야 할 것이다. (철학적탐구 p.259)

 


우리들은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즉, 명령이란 그에 따라 수행된 행위의 그림이라고. 그러나 또한, 그에 따라 수행되어야 할 그림이라고 (철학적탐구 p.265)

질문: 명령이 결과를 만들어낸 행위, 그리고 과정을 만드는 행위란 뜻이 동일한 뜻인가?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간부가 용사한테 '산을 밀어라'라고 명령을 하는 것이 산을 미는 과정을 만드는 행위가 아닌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부모님이 나에게 '커피를 타줘'라고 말(명령)을 했을 때, 내가 커피를 컵에 타는지, 그릇에 타는지, 집에서 타는지, 다른 장소에서 타는지 등등의 과정을 만드는 행위가 아닌 단지 '커피를 타줘'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위라고 또한 생각한다. 

 

나는 내 손가락이 책상을 건드리면 어떤 저항을 감지할 것이라고 가정할 어떤 근거들을 갖고 있는가? 어떤 근거들이 있어, 이 연필이 내 손에 꽂히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믿는가?ㅡ내가 이렇게 묻는다면, 수백 가지의 근거들이 앞다퉈 나타난다. "어쨌든 나는 그것을 몸소 무수히 경험해 왔다; 그리고 비슷한 경험들에 관해 똑같은 정도로 자주 들어 왔다; 만일 그게 그렇지가 않다면, .....할 것이다; 등등."

질문: 저항이라는 언어를 고통이라고 해석하는 것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저항은 '어떤 힘이나 조건에 굽히지 아니하고 거역하거나 버팀', 고통은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이라고 나와있듯이 나도 저항을 고통이라고 해석하는게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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