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철학적 질병들의 한 가지 주요 원인은 편식이다: 우리들은 자신의 사유를 오직 한 종류의 예들로 먹여 기른다. (철학적 탐구 p.289)

 

언어는 하나의 도구이다. 언어의 개념들은 도구들이다. 이제 우리들은 가령, 우리가 어떤 개념들을 사용하느냐는 큰 차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가령 우리가 어떤 개념들을 사용하느냐는 큰 차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결국 물리학을 미터와 센티미터로도, 피트와 인치로도 할 수 있듯이, 그 차이는 단지 편리성이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참은 아니다 예컨대 어떤 측정 체계에서의 계산들이 우리가 들일 수 있느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노력을 요구한다면 말이다. (철학적 탐구 p.281)

 

개념들은 우리를 탐구로 이끈다. 개념들은 우리의 관심이 표현이며, 우리의 관심을 주도한다. (철학적 탐구 p.281)

 

'내적 과정'은 외적 기준들을 필요로 한다. (철학적 탐구 p.284)

 


언어는 하나의 도구이다. 언어의 개념들은 도구들이다. 이제 우리들은 가령, 우리가 어떤 개념들을 사용하느냐는 큰 차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철학적 탐구 p.281)

질문: 여기서 '어떤'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언어는 하나의 도구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체계, 사물, 행동, 생각, 그리고 상태를 나타내는 체계,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의미들의 체계, 문법적으로 맞는 말의 집합, 언어 공동체 내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의 집합의 정의를 뜻하는 것 같다.

 

질문: 언어라는 것 자체를 왜 도구 취급을 하는 것인가?

 

언어를 도구 취급하는 이유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때 문법을 잘못 말하거나 발음이 안좋거나 해도 의사소통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언어 없이 이모티콘을 사용하여 말을 대신 하거나, 손짓과 몸짓으로 의사소통이 된다. 이러한 것 처럼 언어도 이모티콘이나 손짓, 몸짓과 같이 도구라고 취급하는 것이다.

 

견해를 지닌다는 것은 하나의 상태이다.ㅡ무엇의 상태? 영혼의? 정신의? 자, 우리들은 무엇에 대해서, 그것이 어떤 견해를 지닌다고 말하는가? 예컨대 아무개 씨에 대해서. 그리고 이것은 올바른 대답이다.
우리들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아직 어떠한 해명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더 깊이 파고드는 물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특수한 경우에 우리는 무엇을 어떤 사람이 이러이러한 의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한 기준으로 보는가? 언제 우리는 그가 그때 이러한 의견에 도달했다고 말하는가? 언제 우리는 그가 그의 의견을 바꾸었다고 말하는가? 등등.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대답들이 우리에게 주는 그림은 여기서 무엇이 문법적으로 상태로서 취급되는가를 보여 준다.
(철할적탐구 p.282)

질문: "무엇이 문법적으로 상태로서 취급되는가를 보여준다." 의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이렇게 말한 이유가 궁금하다.

 

위의 문장에서 아무개씨가 어떠한 문장을 말을 하였다. 우리는 "우리들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아직 어떠한 해명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더 깊이 파고드는 물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특수한 경우에 우리는 무엇을 어떤 사람이 이러이러한 의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한 기준으로 보는가? 언제 우리는 그가 그때 이러한 의견에 도달했다고 말하는가? 언제 우리는 그가 그의 의견을 바꾸었다고 말하는가? 등등." 과 같이 생각을 할 것이다. 아무개 씨가 말한 문장을 자신이 답을 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동시에 우리는 답도 같이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문법적으로 상태로서 취급되는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내적 과정'은 외적 기준들을 필요로 한다. (철학적 탐구 p.284)

나도 '내적 과정'은 외적 기준들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외부에 대한 접촉이 없을 순 없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 디지털매체를 통해 영상을 보거나, 게시물을 보는 것,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것 등등 모든 것이 외적으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른 사람과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문제가 어려운 것이라고 과정하고 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해결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였을 때, 다른 사람이 풀어낸 과정을 나는 그 과정을 다시 풀어 볼 것인데, 다른 사람이 풀어낸 과정이 잘못 되었다고 판단이 되는 것도 외적 기준을 통해 '내적 과정'이 생긴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어떠한 친구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떠한 주장을 하면 친구는 그 주장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러한 이야기를 정답이 아닌 생각을 하게끔 하는 이야기였고,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혼자서 곰곰히 생각을 많이 했다고 느낀다. 우리의 사고가 생겨나는 것도 어떠한 일을 겪거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깨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일,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외적 기준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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