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분위기의 기술은 특별한 목적들을 위한, 언어의 특별한 적용이다.
(('이해'를 분위기로서, 심적 작용으로서 해석하는 일. 우리들은 모든 것에 대해 어떤 분위기를 덧붙여 구성할 수 있다. '기술 불가능한 성격'.)) (철학적탐구 p.294)

 

"의욕도 하나의 경험일 뿐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말했으면 한다. ('의지'도 단지 '표상'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그것이 올 때 오며, 내가 그것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일으킬 수 없다고?ㅡ무엇처럼? 나는 대체 무엇을 일으킬 수 있는가? 내가 의욕을 이야기할 때, 나는 그것을 무엇과 비교하는가? (철학적탐구 p.295)

 

그리고 우리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의욕하려고 결코 시도할 수 없는 한에서만, 나는 언제라도 의욕할 수 있다."

 

행함 자체는 아무런 경험의 부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연장 없는 점, 바늘의 뾰족한 끝처럼 보인다. 이 뾰족한 끝이 본래의 동작 주체처럼 보인다. 그리고 현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단지 이 행함의 결과처럼 보인다. "나는 행한다"는 모든 경험으로부터 분리된 확정된 뜻을 지는 것처럼 보인다. (철학적 탐구 p.298)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예지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수의적 운동들이 예언된다는 사실을 늘 망각한다. (철학적탐구 p.301)

 

우리들은 의사가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잘못은 있다. (철학적탐구 p.304)

 


"의욕도 하나의 경험일 뿐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말했으면 한다. ('의지'도 단지 '표상'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그것이 올 때 오며, 내가 그것을 일으킬 수는 없다.
 (철학적탐구 p.295)

 

질문: 의욕이 경험일까? 

 

의욕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마음'을 말하는데 이러한 마음도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의욕만으로는 경험을 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한 학기가 시작 될 때 어떠한 과목을 A+ 받겠다 라는 의욕은 단지 나의 마음가짐일 뿐이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경험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떠한 과목을 A+ 받겠다 라고 의욕을 가지고 과목을 듣기 시작할 때 부터는 경험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들은 의사가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잘못은 있다. (철학적탐구 p.304)

질문: 왜 "의사가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 " 라고 말하는 것인가?

 

"의사가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는 의견이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와 같은 의미인지 궁금하다. 만약 의견이 개진된다고 말하면 의견이 점차 나아져 발전함 또는 나아지게 발전시킴 인것인가? 지금 글을 적으며 생각을 한 것이 있다. 의견이 점차 나아져 발전함이 맞는 말인 것인가? 질문처럼 "의사가 개진된다고 말했으면 한다." 의 의미를 아직 확실히 잘 모르겠다. 이 문장의 의미를 계속해서 생각해보며 '내적 갈등'을 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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