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이해되지 않는 낱말의 사용은 이상한 과정의 표현으로서 해석된다.(철학적 탐구 p.155)

 

우리가 ‘규칙을 따른다’라고 부르는 것은 오직 한사람이, 일생에 오직 한 번 할 수 있을 그런 어떤 것인가? “오직 한 사람이 단 한 번 하나의 규칙을 따랐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 하나의 보고가 단 한 번 행해졌다는 것, 단 하나의 명령이 단 한 번 주어졌거나 이해되었다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다. - 하나의 규칙을 따른 다는 것 하나의 보고를 한다는 것, 하나의 명령을 내린다는 것, 하나의 장기놀이를 한가는 것은 관습들(관례들,제도들)이다.“ (철학적 탐구 p.156)

 

언어는 하나의 미로다. 당신이 어떤 한 측면으로부터 오면, 당신은 길을 훤히 안다; 당신이 다른 한 측면으로부터 그 동일한 자리에 오면, 당신은 더는 길을 훤히 알지 못한다. (철학적 탐구 p.158)

 

인간의 공통적인 행위 방식은 우리가 우리에게 낯선 언어를 해석할 때 의거하는 준거 틀이다. (철학적 탐구 p.159)

 

그 선은 내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나에게 암시해준다.” (철학적 탐구 p.167)

 


이해되지 않는 낱말의 사용은 이상한 과정의 표현으로서 해석된다. (철학적 탐구 p.155)

질문: 이상한 과정의 표현이 무엇인가?

 

이번에 새로 나온 신조어인 카디 라는 낱말을 말하였을 때, 신조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해하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카디를 해석하기 위해서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나 또한 카디를 해석하기 위해 많은 단어를 끼워 맞출려고 했으니 말이다.이렇게 이해되지 않는 낱말을 사용하면 낱말을 해석하기 위함이 이상한 과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한 사람이 단 한 번 하나의 규칙을 따랐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 하나의 보고가 단 한 번 행해졌다는 것, 단 하나의 명령이 단 한 번 주어졌거나 이해되었다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다. - 하나의 규칙을 따른 다는 것 하나의 보고를 한다는 것,하나의 명령을 내린다는 것, 하나의 장기놀이를 한가는 것은 관습들(관례들,제도들)이다. (철학적 탐구 p.156)

 

질문: 우리가 '규칙을 따른다'라고 부르는 것은 오직 한사람이, 일생에 오직 한번 할 수 있을 그런 어떤 것인가?

 

어떤 한 사람이 최소한 또 한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 없이도 할 수 있는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과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규칙의 적용에서) 여러 번의 한결같은 행위 없이 단 한번의 행위만으로도 성립할 수 있는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이 결합된 것이다. 오직 한 사람이 오직 한 번 하나의 규칙을 따랐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규칙 따르기는 오직 한 사람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최소한 또 한 사람을 더 필요로 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오직 한 사람의 규칙 따르기는 오직 한 번의 행위로는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어떤 식의 한결같음(규칙성)을 지닌 일련의 행위를 하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이렇게 개인적, 사회적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오직 프랑스어만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나는 이 낱말들을 그에 대응하는 프랑스어 낱말들로 설명할것이다. 그러나 이 개념들을 아직 소유하지않은사람에게는, 나는 예들과 실습을 통해서 그 말들을 사용하는법을 가르칠 것이다.
질문: 그러니까 나는 무엇이 "명령"이라 불리고 무엇이 "규칙"이라 불리는지를 "규칙성'에 의해  설명하고 있는가? , "규칙적이다", "한결같다", "같다"의 의미를 나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설명하는가?

 

근거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규칙적이다", "한결같다", "같다"의 의미를 우리나라 사람에게 설명을 하면 사전의 내용을 말해주거나, 내가 이해한 설명을 할 것이지만, 외국어를 하는 사람에게 말을하면 번역된 사전의 내용으로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을 아직 소유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123456789 와 같은 숫자의 규칙성을 예로 들어 말할 것이다.

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우리가 얻고자 애쓰는 명료성은 물론 완전한 명료성이기 때문이다.(철학적 탐구 p.108)

 

그러나 도대체 우리는 명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 즉 “명제“라는 것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디 않은가? (철학적 탐구 p.109)

 

우리에게 보이는 낱말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들리는 낱말들과 비슷한 정도로 우리에게 낯익다는 점을 염두에 두라.
(철학적 탐구 p.135)

 

명제란 참 또는 거짓일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는 우리의 언어에서 진리 함수 계산법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을 명제라고 부른다는 말로 귀착된다. (철학적 탐구 p.136)

 


왜냐하면 내가 인쇄된 낱말들을 보고 낱말들을 발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읽기가 아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철학적 탐구 p.133)

질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왜 읽기가 아닐 수 있는가?

 

우리가 책을 읽을 때 단어를 전부다 이해하고 읽는 것이 아니다. 또한 문장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계속 읽으면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책을 계속 읽거나, 이해되지 않은 부분을 다시 읽거나, 해석을 위한 글을 찾아보거나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인쇄된 낱말들을 보고 낱말을들 발화하지만 이 부분이 이해되지 않으면 이것은 읽기가 아닐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해되지 않으면 읽기가 아닌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된 책을 '읽는다' 라는 것은 읽는다 말 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된 책이면 '읽는다'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끊김없이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앞 본문에서 말했듯이 이해가되지 않는 부분을 다시 읽어서 생각하거나, 해석된 글을 찾거나, 모르는 단어를 찾아 이해 할것이므로 읽는다 라고 말할 것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된 책이면 단어마다 끊어서 읽어야 될 것이다.

 

"그가 이해한다."는 그의 머리에 공식이 떠오른다는 것 이상을 포함해야한다. 그리고 또한 마찬가지로, 이해의 저다소 특징적인 동반 과정들이나 표출들 이상을 포함해야한다.(철학적탐구 p. 123)

질문) '이해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느정도 범위를 말하는 것인가?

 

나는 '이해했다.' 라는 범위는 남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 정도를 이해 했다고 말할 것이다.

 

 

 

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명제 그것은 매우 이상한 것이다!
그것에 귀속되는 엄청난 의미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의미가, 그리고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가, 명제란 비상한, 실로 비길데 없이 독특한 어떤 것을 행함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오도한다. (철학적 탐구 p.94)

 

사유란 비길 데 없이 독특한 것임이 틀림없다. (철학적 탐구 p.95)

 

"우리는 우리의 표현 방식에서 이상이 행하는 역할을 오해하고 있다고. 즉, 우리도 역시 그것을 놀이라고 부를 것이나, 다만 우리는 이상에 의해 눈이 멀었으며, 그런 까닭에 놀이란 낱말의 실제 적용을 똑똑히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다. (철학적 탐구 p.97)

 

철학은 우리의 언어 수단에 의해 우리의 지성에 걸린 마법에 맞서는 하나의 투쟁이다. (철학적 탐구 p.101)

 

우리의 몰이해의 한 가지 주요 원천은,  우리가 우리의 낱말들의 쓰임을 일목요연하게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법에는 일목요연성이 결여되어 있다.  일목요연한 묘사가 이해를 성사시키며, 이해란 다름 아니라 우리가 ‘연관
들을 본다’는 데 있다.  그런 까닭에 중간 고리들의 발견과 발명이 중요한 것이다. (철학적 탐구 p. 104)

 


그러나 그렇다면 그것은 놀이가 아니다?-"그렇다, 아마 당신은 그걸 놀이라고 부를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어쨋든 완벽한 놀이다 아니다" (철학적 탐구 p.97)

질문 : 규칙들에 모호함이 존재한다면, 그건 좌우간 놀이가 아니다”라고 한다. 과연 모호하다고 해서 놀이가 아닐까?

 

우리가 흔히 아는 농구라는 놀이는 1점,3점의 점수를 매기는 것은 바닥에 정확하게 선으로 확인을 한다. 하지만 규칙이 생기지 않았을 때에 당시에는 모호한 규칙인 놀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모호한 규칙들이 놀이를 진행하며 진화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놀이(축구,야구,농구,원카드 게임 등등)이 아닌 새로운 놀이가 생겨났을 때도 모호한 규칙이 많이 생길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호한 규칙들이 해결되며 정확한 "규칙" 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에서 "논제"들을 수립하고자 한다면, 그것들에 관해서는 결코 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적탐구 p. 106)

질문 : 현시점에서도 논제들을 수립하고자 하면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개개인의 사실이나 명제에서 일반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추론법인 귀납법과 보편명제에서 특수 명제를 이끌어내는 추론법인 연역법 등으로 논제가 수립된다고 생각하여 토론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

 

우리가 이 요소들을 설명(즉 기술)할 수는 없고 단지 명명할 수만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이 낱말이냐 문장이냐 하는 것은 그것이 발화되거나 필기되는 상황에 달려 있다. (철학적탐구 p.61)

 

우리들이 요소에 존재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은, 만일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명명조차 할 수 없을 터이고, 따라서 그것에 관해 전혀 아무것도 진술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철학적탐구 p.62)

 

언어의 이름들이 지칭하는 것은 파괴 불가능해야 한다. 왜냐하면 파괴 가능한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는 상태가 기술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 속에는 낱말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 낱말들에 대응하는 것은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그 낱말들은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적탐구 p.66)

 

규칙은 이정표처럼 있다. 이정표는 내가 가야 할 길에 관해 아무런 의심도 열어 두지 않는가? 내가 그 옆으로 지날 때 그것은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즉 도로를 따라서 가야 할지, 또는 들길을 따라가야 할지, 또는 들판을 가로질러 가야 할지를 보여 주는가? 그러나 내가 그것을 어느 뜻으로 따라야 하는지, 즉 손가략 방향인지, 또는(예컨대) 그 반대 방향으로인지 하는 것은 어디에 적혀 있는가? (철학적탐구 p.87~88)

 

이름들은 현실의 요소인 것만을 지칭한다. 파괴될 수 없는 것, 모든 변화 속에서 똑같이 남아 있는 것을. (철학적탐구 p. 69)

 

비트겐슈타인은 이름이 단순한 것을 지칭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 후에 단순한 것은 무엇이냐?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복학접인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후에 <테아이테토스>의 묘사에 적용된 어떤 언어놀이를 보고 이야기하자면, 무엇이 단순한가, 복합적인가는 우리가 무엇을 단순,복잡한 것이라고 말하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소의 존재와 일람표에 대해 이야기 하며, 요소의 존재는 그것이 존재한다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의 가능성을 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이름들이 지칭하는 것은 파괴 불가능해야 한다. 왜냐하면 파괴 가능한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는 상태가 기술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는 그이 이름에 대응하는 것이며, 그는 파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그 소지자가 파괴될 때 의미를 잃지 않습니다. "이름들은 현실의 요소인 것만을 지칭한다. 파괴될 수 없는 것, 모든 변화속에서 똑같이 남아 있는 것을." 구성 요소는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데 반해서 자신은 변하는 하나의 전체를 보기도 한다. "가족 유사성"이란 단어는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닮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공통성질을 공유하는 것같이 게임들이 모두 공유하는 하나의 공통적인 본질은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에서 강의로 진행된 아레테고전강독(철학적탐구)를 진행하며,"철학적 탐구"의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철학적 탐구"는 비트겐슈타인의 책이며, "논리-철학 논고"의 책에서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것, 말할 수 없는 것과 언어의 궁극적 본질에 대해 다루었고, "철학적 탐구"는 기존의 언어관을 수정되고, 언어의 일상적 사용과 실천에 의해서 언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하고, 언어놀이라는 개념의 제안을 통해 컨텍스트 안에서 언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음을 제시합니다.


 

인상 깊은 구절

언어의 모든 낱말은 각각 어떤 것을 지칭한다"라고 우리가 말할 때, 우리가 어떤 구별을 하기를 원하는지가 정확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로써 당장은 아직 전혀 아무것도 말해진 것이 없다. (철학적탐구 p.32)

 

우리들은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대상들을 명명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 형태, 색깔, 고통, 기분, 수 등등을 명명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말했다시피, 명명이란 사물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과 비슷한 어떤 것이다. (철학적 탐구 p.42)

 

"우리가 사람 이름으로 그 사람을 부른다는 것이 얼마나 별난 것인지를 생각하라!" (철학적탐구 p.43)

근거) 우리는 "이것은 뭐라고 하지요?" 라고 묻도록 교육, 훈련 받았으며, 그러면 이에 대해 이름을 대는 일이 뒤이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어떤것에 대해 이름을 대는 일이 뒤이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라고 한다"라고 말하고는 그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는 언어놀이 말이다.

 

낯선 나라에 가는 사람은 때로는 그 토착민들의 언어를 그들이 그에게 해 주는 지시적 설명들을 통해 배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설명들의 해석을 종종 추측해야하며, 때로는 옳게, 때로는 잘못 추측할 것이다 (철학적탐구 p.47)

 

낱맡이 명백히 이름이 아닌 곳에서 왜 우리들은 바로 이 낱말을 이름으로 만들려고 하는 생각에 이르는가?
우리들은 "이름"이라고 통상적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 어떤 제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의는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즉, 이름은 본래 단순한 것을 지칭해야 한다고 말이다. (철학적탐구 p.53)

#1 ~ 44 까지 읽고 느낀 점

책을 한장씩 넘겨가며 읽을 때 내용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읽어 나가면 어느 시점에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전부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의 내용이 이해 되는 것이며, 이 책은 읽으면서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닌 독자들의 두뇌를 계속 자극하여 스스로 사고, 생각 할 수있도록 만들어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철학적 물음들에 직접 대답하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예시나 이야기를 통해 답을 암시하고, 단서는 주어지지만 함축적 의미는 불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공동탐구를 진행하는데 공동탐구를 참여하면서 책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며 소통하여 나의 생각을 정리 할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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